“없는 길은 만들면 됩니다” 마케터에서 UX, PO를 거쳐 캔디드에 이르기까지

29CM·카카오·티오더를 거쳐 캔디드에 합류한 이해리 컨설턴트의 커리어 서사. 본인의 역할을 스스로 정의해온 이해리님의 커리어 인사이트를 담았습니다.
Jan 08, 2026
“없는 길은 만들면 됩니다” 마케터에서 UX, PO를 거쳐 캔디드에 이르기까지
 

인터뷰에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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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없으면 뚫고 들어갑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커리어를 쌓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정해진 길’ 바깥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전공이나 직무의 경계, 조직 안에 존재하지 않는 역할,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 같은 것들 앞에서요. 그 순간 앞에서 대부분은 멈추거나, 돌아가거나, 타협합니다.
 
하지만 여기, 그 벽을 만날 때마다 “문이 없으면 내가 뚫고 들어가겠다”는 태도로 돌파해 온 사람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공고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제안하고, 조건이 부족하면 가능한 자원을 재배치해 판을 만들고, 애매한 상태로는 시작하지 않고 “무엇이 문제인지”부터 다시 정렬하는 사람. 캔디드의 이해리 컨설턴트입니다.
 
그는 쿠팡, 카카오, 29CM, 티오더 등 굵직한 IT 기업을 거치며 마케터이자, UX 전략가이자, PO로 치열하게 성장해왔습니다. 화려해 보이는 이력서의 이면에는, 남들이 보지 못한 ‘빈틈’을 찾아 집요하게 파고든 ‘야생성’이 숨어 있습니다.
 
이제 그는 캔디드에서 기업과 인재를 연결하는 채용 컨설턴트로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합니다. “채용 시장의 비효율을 해결하는 것이 곧 비즈니스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해리님을 만나, 그가 걸어온 개척의 여정과 새로운 도전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해진 길보다, 더 넓은 판이 궁금했던 사람”

 

유아교육과를 나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의 커리어와는 꽤 다른 출발점인데요. 원래부터 이쪽 진로를 염두에 두고 있던 건 아니었나요?

 
어릴 때부터 한 가지 길만 보고 달려온 타입은 아니었어요. 고등학교는 조리 특성화고를 선택했어요. TV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접했는데, 일반 문과/이과 트랙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인상적이었거든요. 정해진 교과 과정 안에서 경쟁하기보다는, 각자가 꿈꾸는 방향을 만들어가는 느낌이 제 성향과 잘 맞아 보였어요. 요리 분야 자체는 잘 몰랐지만, 어릴 때부터 문화·예술 콘텐츠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보니 ‘안 해봤지만 궁금한 세계’라는 감각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제 성향에 맞는 리듬으로 발을 디딘 첫 선택이었어요.
 
수시라는 선택지를 내려놓고 수능에 올인했지만, 당일 컨디션과 주변 환경까지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결과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어요. 파티시에를 할지, 재수를 할지 고민하던 중 우연히 한 대학의 2차 추가 모집 공고를 보게 됐어요. ‘취업 100%’, ‘전망 직종’ 같은 키워드에 이끌려, 깊은 고민보다는 당시의 현실을 반영한 판단으로 지원했어요. 합격 연락을 받았을 때는 바로 다음 날이 O.T였기에, 돌이킬 틈도 없이 그렇게 유아교육과 생활이 시작됐죠. 지금까지도 이 선택은 제 인생에서 손에 꼽히는 가장 급작스러운 결정이에요.
 
학교 커리큘럼을 따라가며 지내다 보니 ‘이게 정말 내가 몰입하고 싶은 세계인가?’라는 질문이 계속 따라붙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기자 출신 지인이 “글 쓰는 걸 좋아하니 대학생 기자단 해보는 건 어때?”라고 권했고, 그 제안을 계기로 대외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이후 여러 대외활동을 경험하며 학교 바깥의 세상을 본격적으로 접했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에 점점 매력을 느끼게 됐어요. 특히 마지막으로 참여했던 대기업 마케팅 대외활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치를 전달하고 반응을 만들어내는 일이 제가 몰입할 수 있는 일의 방식이라는 걸 분명히 알게 됐고요.
 
결국 유아교육에서의 ‘정석 코스’를 계속 걸어갈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유아교육과 졸업생 중 자격증 없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0에 수렴할 텐데요. (웃음) 마지막 한 달간의 정규 실습 도중, “나는 이 레일 위에서는 행복할 수 없다. 자격증을 포기하더라도 더 넓은 판으로 나가자”는 결정을 내렸어요. 당시 대외활동 우수활동자에게는 대학내일(유스 마케팅 에이전시) 인턴 서류 전형 합격 기회가 주어졌는데, 별다른 스펙이 없던 제게는 가장 현실적으로 닿아 있는 기회였어요. 결국 40명 중 우수활동자로 선발돼 인생 첫 면접을 보고 입사까지 이어졌고요. 이 선택은 제 커리어 전반을 관통하는 첫 결정이었어요. 안정적인 경로보다, 그 시점에 가장 흥미를 느끼고 몰입할 수 있는 선택을 했고, 그 경험이 이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환경과 역할에 도전하게 만든 출발점이 됐습니다.
 

“신입 사원이 예산 0원으로 3,000명을 모은 방법”

 

그렇게 뛰어든 첫 사회생활이 스타트업이었죠. 14년도 당시엔 ‘스타트업’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을 때인데, 어떻게 합류하게 되었나요?

 
우연히 TV 프로그램 <세바시>를 보는데, 한 데이팅 앱 스타트업의 여성 대표님이 나와서 비전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음지의 데이팅 서비스를 양지로 끌어올리고, 건강한 만남 문화를 만들겠다는 포부가 와닿았죠. 무작정 페이스북으로 그분의 이름을 찾았고, 마침 신입 마케터를 뽑는다는 글을 보고 연락을 드렸어요. 가진 건 열정뿐이었지만, 인턴 때 몸으로 부딪치며 배운 ‘근성’을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막상 들어간 회사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녹록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전쟁터였죠. 입사 후 얼마 안 되어 회사가 3,000명 규모의 대형 오프라인 행사인 ‘싱글런’을 준비하게 됐는데, 내부 상황이 최악이었습니다. 대표의 교체에 이어 저를 가르쳐주던 사수들도 줄줄이 퇴사했고, 오프라인 전담 팀마저 공중분해 됐어요. 남은 건 신입인 저와, 다른 팀의 기획자 한 분뿐이었죠.
 
더 큰 문제는 예산이었습니다. 3,000명을 모객해야 하는데 마케팅 예산이 고작 300만 원도 안됐어요. 사실상 ‘0원’으로 행사를 치르라는 미션이었죠. 그때는 정말 맨날 화장실에서 울면서 일했어요. 배울 곳은 없고 책임은 무거운 상황이었고, 신입으로서는 감당하기 벅찬 순간도 많았어요. 하지만 어쩔 수 있겠어요. 맨땅에 헤딩할 수밖에요.
 

예산 없이 3,000명을 모으다니, 대체 어떤 방법을 쓰신 건가요?

 
돈이 없으니 ‘몸’과 ‘머리’를 써야 했죠. 당시 2030 여성들이 많이 쓰던 앱 서비스들—화해, 다노, 언니의파우치, 등의 대표님들을 직접 찾아가 제휴를 제안했습니다. “우리 행사에 3,000명의 2030 남녀가 모인다. 너희 유저들에게 티켓을 무료로 제공할 테니, 대신 너희 앱에 우리 행사를 홍보해 달라.” 서로의 유저풀과 트래픽을 교환하는 전형적인 ‘바터(Barter) 마케팅’이었는데, 신입 사원이 직접 대표들을 찾아가 제안을 하다 보니 그 상황 자체를 흥미롭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커뮤니티 바이럴이었어요. 지인들의 아이디를 빌려 각 사이트의 톤 앤 매너에 맞춰 어그로성 포스팅을 올렸어요. “신입 사원인데 살려주세요”라는 식의 호소문부터, “여기 물 좋다더라”는 식의 정보성 글까지. (웃음) 결과적으로 거의 돈을 쓰지 않고 3,000명 모객에 성공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죠. “아, 조건이 갖춰지지 않아도, 집요하게 파고들면 길은 만들어지는구나.” 이 경험이 제 커리어 전반을 관통하는 ‘야생성’을 길러준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요? 제안해서 만들면 되죠”

 

카카오와 피키캐스트를 거쳐 29CM에 합류하셨죠. 29CM에서의 경험이 커리어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피키캐스트에서는 퍼포먼스부터 브랜딩, 당시 막 시작되던 그로스 마케팅까지 비교적 제너럴하게 경험했어요. 빠르게 실험하고 반응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많은 걸 배웠지만, 한편으로는 좀 더 주류 도메인에서의 경험에 대한 갈증도 생기기 시작했죠.
 
그 흐름 속에서 합류하게 된 곳이 카카오였어요. 평소 디지털 콘텐츠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던 영역이 이모티콘이었고, 카카오 이모티콘 서비스 마케팅을 맡게 됐습니다. 목적 조직에서 기획자와 긴밀하게 협업하며 서비스를 고민하는 환경 자체는 굉장히 좋았어요. 다만 카카오톡이 사실상 표준에 가까운 서비스이다 보니, 경쟁을 통한 확장보다는 내부 매출 파이를 키우는 방향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마케터로서 새로운 실험이나 외부 확장에는 제약이 많았는데요. 그 과정에서 ‘내가 더 성장하려면 어떤 환경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이 또렷해졌습니다.
 
그때 다시 떠오른 브랜드가 29CM였어요. 물건을 파는 커머스가 아니라, 브랜드의 맥락과 취향을 정제된 방식으로 전달하는 곳. 제가 하고 싶었던 브랜딩의 방향과 가장 맞닿아 있는 브랜드였죠.
 
채용 공고는 없었지만, 기다리지 않고 먼저 움직이기로 했어요. 29CM 당시 대표님께 직접 메시지를 보내 제 경험과 함께 “이 브랜드 자산을 더 입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제안했고, 그렇게 기존에 없던 포지션을 만들어 합류하게 됐습니다.
 

여러 프로젝트를 해오셨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어떤 것이었나요?

 
29CM에서 진행했던 ‘브랜드 소셜 클럽’ 프로젝트가 성과를 떠나 가장 애착에 남아있어요. 그전까지 저는 스스로를 오너십이 강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처음으로 ‘이건 내 일이다’라고 규정할 수 있는 범위 자체를 스스로 넓혀보는 경험을 했어요. 무엇이 문제인지부터 다시 정의하고, 필요한 사람과 자원을 직접 연결하는 역할을 맡게 되면서요. 그때 처음으로 제 손으로 판을 만들고 그 책임을 끝까지 가져가는 감각을 분명히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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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나요?

 
29CM는 이미 브랜드와 상품을 콘텐츠처럼 풀어내는 강점을 가진 플랫폼이었고, 특히 대표적인 브랜딩 콘텐츠이자 BM인 29CM PT라는 포맷도 단단하게 구축해가고 있었죠. 다만 당시 강남 한복판에 오프라인 공간이 있었는데, 공간 자체의 포지션이 명확하지 않아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이 공간을 그냥 매장이 아니라 콘텐츠로 쓰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됐고, 브랜드와 고객이 직접 만나 경험을 만들고, 그 경험이 다시 온라인 콘텐츠로 확장되는 구조를 구상하게 됐어요.
 
‘브랜드 소셜 클럽’은 고유한 이야기를 가진 브랜드와 고객이 직접 만나 이야기를 만들고, 관계를 형성하는 오프라인 소셜 프로그램이었어요. 이 프로젝트에서 29CM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돕는 것’이었어요. 브랜드가 현장에서 스스로의 정체성과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낼 수 있도록 뒤에서 구조와 맥락을 설계하는 역할이었죠.
 
  • 사전에 브랜드를 리서치하고 인터뷰하며 답변을 함께 정제해나가고
  • 그 브랜드에 관심을 가질 만한 고객을 선별해 초대하고
  • 브랜드토크 - 네트워킹 토크 - 팝업 구조를 통해 고객이 브랜드의 팬이 되는 경험을 설계하는 것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경험은 다시 온라인 콘텐츠로 재가공되어 브랜드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브랜딩 자료로 활용되도록 했어요.

듣기엔 이상적인 브랜드 마케팅 같네요. 현실적인 제약은 없었나요?

 
굉장히 많았어요. 예산도, 인력도 거의 없다고 봐야 했거든요. 자체 공간을 활용하고, 케이터링은 수십 곳을 비교해 평균 대비 1/3 수준으로 조정, 주류는 협찬, 시딩 기프트와 럭키드로우는 브랜드들과의 크로스 딜로 해결했어요. 인력 또한 기획부터 사후 콘텐츠까지 실질적인 구성은 저와 영상 PD 인턴 한 명이 전담했고,행사 당일에만 동료들이 운영을 도와주는 구조였어요.
 
당시 새로 오신 커머스 CMO님의 우려도 적지 않았어요. “이 방식이 당장 매출에 어떤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이 있었지만, 저는 이 프로젝트를 단기 매출로 설득하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브랜드 마케팅의 본질에 맞게, 29CM라는 브랜드가 얼마나 진하게 각인되는 경험을 만들 수 있느냐를 성패의 기준으로 두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그 체감을 가능하게 만드는 전략으로 ‘큐레이션’과 ‘신뢰’를 핵심에 두고 프로젝트를 설계했어요.
 
실행 단계에서는 참가 신청 시 인스타그램 계정을 필수로 받고, 매회 브랜드의 결에 맞는 사람 40명을 직접 선별했어요. 또 행사 전에 브랜드 제품을 미리 전달해 UGC 기반 사전 노출이 가능하도록 시딩 전략을 쓰면서, 노쇼가 발생하면 제가 책임지겠다고 내부를 설득했죠. 참가자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제품을 받았을 때의 가이드라인까지도 세심하게 챙겼습니다.
 
월간 행사로 10회를 진행한 결과, 별도의 광고 집행 없이도 매회 600-700명의 신청자가 몰렸고, 현장 참여율은 약 99%, 사전·사후 유기적으로 생성된 SNS 콘텐츠 400건 이상, 사후 NPS는 80점대를 기록했어요. 단순한 월간 행사가 아니라, 브랜드와 고객이 관계를 맺는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었다고 체감했죠.
 
입점 브랜드들 사이에서도 “29CM와 이런 방식으로 협업해보고 싶다”는 문의가 이어지면서, 당시 CSO로부터 이 프로젝트를 신사업 TF로 확장하며 리드를 맡아달라는 제안도 받았어요. 제 퇴사와 함께 코로나까지 맞물리면서 프로그램은 중단되었지만, 지금까지도 가장 몰입했고, 가장 ‘청춘답게’ 일했던 경험으로 남아 있어요.
 

화려한 빅테크 커리어 뒤에 숨겨진 ‘진짜 갈증’ 그리고… ‘캔디드’

 

마케터에서 UX로, 또 PO로 커리어를 확장해오셨잖아요. 이 흐름을 관통하는 갈증이 있었나요?

 
고객의 터치포인트 최전방에서 일하는 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다만 일을 하면 할수록 “이 기능은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문제 정의가 이 단계에서 이미 어긋난 건 아닐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더라고요. 막연하게나마 ‘제품을 만드는 쪽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고 싶다’는 갈증이 생겼죠.
 
마케팅 경력 6년 차를 꽉 채우던 시점, 쿠팡에서 UX Content Strategist(UX Writer) 제안을 받았어요.
 
당시 쿠팡은 UX 조직을 리빌딩하며 국내 최초로 UX Writer 직군을 만들던 시기였고, 기존의 강점을 살리면서도 제품의 end-to-end 경험을 ‘언어’로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래서 꽤 큰 결심이었지만, 커리어를 끊고 피봇하기로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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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에서의 시간은 어떤 성장을 만들어줬나요?

 
쿠팡에서는 “왜 이 문제를 겪고 있을까?”를 끝까지 파고드는 훈련을 많이 했어요.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각 여정을 인지 심리 관점으로 해석한 뒤, 글이라는 도구로 고객이 원하는 행동과 결과에 자연스럽게 도달하도록 설계하는 법을 계속해서 연구했어요.
 
특히 UX Writer라는 직무 특성상, 소수 인원이 모든 제품 여정을 직접 커버할 수는 없기 때문에 조직 전체가 같은 UX 기준을 공유하도록 만드는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그래서 코어 프로덕트뿐 아니라 광고, 쿠팡플레이, 풀필먼트 등 서로 다른 목적 조직들이 하나의 서비스처럼 느껴지도록 보이스 앤 톤, UX 라이팅 원칙, 상황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전사 문서와 교육으로 확산시켰어요. 이 과정에서도 감이나 취향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 위닝 케이스와 명확한 논리를 기준으로 정렬하려고 했고요.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경험은, 프로덕트 바깥의 고객, 즉 쿠팡이라는 회사의 ‘후보자’를 대상으로 한 채용 콘텐츠 전략을 직접 기획한 일이었어요. 이 경험은 이후 ‘채용을 하나의 고객(후보자) 경험으로 본다’는 관점의 씨앗이 됐습니다.

그러다 다시 스타트업으로 이동해 역할의 폭을 더 넓혀오셨네요.

 
쿠팡에서 약 2년 반이 지나면서 조직이 빠르게 커졌고, UX Writer 포지션도 목적 조직 단위에 편입되면서 프로젝트 단위 문제 해결에는 더 집중할 수 있었지만, 언어 거버넌스나 시스템 설계 영역에서는 더 깊게 가져가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동안의 레슨런을 가지고, 이번에는 제로에서 구조를 다시 만들어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고 그 선택이 AI 헬스케어 스타트업이었어요.
 
초기에는 B2C 수면 분석 앱의 UX Writing으로 시작해, 곧 디지털 치료제(DTx) 앱의 UX 기획, 브랜딩, 치료 콘텐츠 제작까지 0 to 1 환경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어요. 임상 단계 이후에는 C레벨과의 논의 끝에 AX(AI-UX) 선행 전략 조직을 직접 빌딩했고, 첫 매니징 경험도 이때 경험했죠. 수면 해석 알고리즘, 슬립 스코어, 만족도 분석 등 AI 리서처와 함께 실험을 반복하며 ‘기술을 어떻게 고객이 이해 가능한 경험으로 바꿀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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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PO 역할로 이어지게 된 계기는요?

 
에이슬립이 재정적 위기를 겪으며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제 커리어를 다시 점검하게 됐어요. 마케터나 UX Writer로 롤백하기보다는, 문제 정의 자체에 더 집중하는 역할이 제 성향에 맞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돌아보니 제가 해온 일의 상당 부분이 이미 PM의 역할과 맞닿아 있었어요. 그래서 PO/PM 경험 없이 시니어 포지션에 도전했고, 여러 번의 실패 끝에 티오더의 PO, PM 팀 리드로 합류했습니다.
 
티오더는 당시 하드웨어 의존성과 기술 레거시가 큰 서비스였어요. 백로그만 400개 이상 쌓여 있었고, 단기적인 애자일보다는 구조를 다시 짜는 게 우선인 상황이었죠. 그래서 1년 단위 로드맵을 기준으로 고객 경험, 운영 효율, 매출, 글로벌 이슈, 기술 부채를 목적별로 정리했고 하나의 기획이 여러 제품에 미치는 영향을 항상 함께 고려해야 했어요. 많은 걸 배웠지만 동시에, 이 환경에서는 제가 그간 강점으로 가져온 ‘고객 경험 설계’ 역량을 충분히 실험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분명히 느꼈어요.
 
이 지점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했어요.
 
“다음 회사에서도 또 하나의 제품 안에서만 문제를 풀게 되면, 내가 정말 풀고 싶은 문제는 언제 탐색해볼 수 있을까?”
 
제 커리어의 엔드골은 언젠가 내 비즈니스를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에요. 그 준비 과정에서, 회사 안의 문제만 반복해서 풀다 보면 정작 문제를 고를 수 있는 힘은 기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시점에 캔디드 대표님과 대화를 나누게 됐고, 캔디드를 단순한 헤드헌팅 회사가 아니라 스타트업의 채용 문제를 ‘문제 정의’부터 다시 풀어보려는 또 하나의 스타트업으로 보게 됐어요.
 

캔디드의 어떤 점이 해리 님의 마음을 움직였나요?

 
대표·C레벨·하이어링 매니저를 직접 만나 창업 배경부터 현재의 마일스톤, 조직 구조와 한계, 그리고 채용의 진짜 목적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방식이 인상 깊었어요.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하는가”보다 “왜 지금 이 역할이 필요한가”를 먼저 정의하는 접근은, 제가 그동안 익숙하게 해왔던 문제 정의와 구조화의 방식과 굉장히 닮아 있었거든요.
 
후보자 관점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단순히 포지션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커피챗을 통해 커리어의 맥락과 강점, 고민을 충분히 이해한 뒤에 연결하고, 인터뷰 과정의 엔드투엔드를 함께 설계해가는 파트너십 구조라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채용을 하나의 ‘매칭’이 아니라, 조직과 사람 모두의 선택을 돕는 문제 해결 과정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대표님과의 대화에서 들었던 ‘골든 크로스(Golden Cross)’라는 표현도 강하게 와닿았어요. 기업이 처한 맥락과 후보자가 가진 역량이 정확히 교차하는 지점.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케팅에서 고객을 이해하고, UX와 PO로 문제의 앞단을 설계해왔던 제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지점이 보였어요. 29CM에서 브랜드와 팬을 연결했다면, 이제는 조직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을 해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그래서 캔디드에서의 선택은 저에게 단순한 직무 전환이 아니라, 제 커리어의 엔드골로 가기 위한 인큐베이션 과정에 가깝다고 느껴졌어요. 지금은 캔디드에서 스타트업의 채용 문제를 풀며 시장과 조직, 그리고 사람을 동시에 배우고 있고, 그 과정 자체가 앞으로 제가 만들고 싶은 ‘내 업’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스타트업, 채용의 비효율을 해결하는 ‘맥락의 설계자’

 

UX, PO 출신으로서, 채용 시장에서 가장 크게 느낀 문제는 무엇이었나요?

 
면접관을 수 차례 경험해오면서 채용 과정 자체가 구조적으로 비효율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하이어링 매니저들은 현업에 치이다보니 이력서를 깊게 볼 여유가 없고, 수많은 지원서가 쏟아지는데 실제로는 키워드 몇 개를 기준으로 빠르게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CTO님이 “이력서는 30초 이상 보면 안 된다”고 할 정도였죠. 그 과정에서 충분한 맥락과 잠재력을 가진 후보자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탈락합니다.
 
반대로 인하우스 리크루터 입장에서는 팀의 기술적 맥락이나 사업 단계, 조직 내부의 미묘한 상황까지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보니, 스크리닝 역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요. 결국 회사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고, 후보자는 “갈 곳이 없다”고 느끼는 미스매치가 반복된다고 느꼈어요.
 

그렇다면 캔디드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고 있나요?

 
캔디드에서의 역할은 단순히 사람을 빠르게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력서 너머의 ‘맥락’을 해석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후보자의 경험이 지금 이 조직의 사업 단계와 팀 상황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해석하고, 그 맥락을 기업 언어로 번역해 전달하는 거죠.
 
“이 사람 스펙이 좋다”가 아니라, “지금 이 조직이 겪고 있는 이 문제를, 이 후보자는 과거 이런 환경에서 이렇게 풀어본 경험이 있다”는 식의 연결이요.
 

실제로 일하며 가장 크게 체감한 인사이트는 무엇이었나요?

 
온보딩 초반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 하나 있어요.
 
“고객사도 후보자도, 사실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 더 중요한 건,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처음엔 이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일을 하면서 정말 그렇다는 걸 몸소 깨달았어요.
 
초기 스타트업의 고객사들은 제품과 조직이 빠르게 변하다 보니, 채용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역할의 정의와 기대치가 계속 흔들리는 경우가 많아요. 이 상태에서 채용을 진행하면, 아무리 좋아 보이는 후보자를 만나도 인터뷰 과정에서 기준이 바뀌며 놓치게 되는 일이 반복되죠. 그래서 ‘누구를 뽑을지’보다, ‘왜 지금 이 역할이 필요한지’를 초반에 최대한 뾰족하게 정의하고 정렬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후보자 쪽도 마찬가지예요. 대부분은 막연한 방향성은 있지만, 이직 국면에 들어서면 AI나 글로벌 같은 메가트렌드 키워드에 끌려 스스로의 최종 목표와는 다른 선택지 앞에서 망설이거나, 반대로 이전 경험이 힘들었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안전한 선택만 하려는 경우도 자주 보게 돼요. 이럴 때 제 역할은 정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대화 속에서 그 사람의 진짜 동기와 기준을 함께 정리해주는 거예요. 선택이 가져올 트레이드오프까지 인지한 상태에서, 자신의 커리어 서사에 맞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 후보자 사이드에서 캔디드가 풀어야 할 핵심 문제도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캔디드에서의 일은, 사람과 조직을 대상으로 서로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 스스로 이해하도록 돕는 일이라고 느껴요. 이 문제를 정의하고, 맥락을 정리하고, 양쪽의 시선을 맞춰가는 과정 자체가 제가 지금 캔디드에서 가장 도전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과제이기도 하고요.
 

일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어떻게 균형을 잡으시나요?

 
일을 할 때 깊이 몰입하다보니 가끔은 매몰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의식적으로 리듬을 조절하지 않으면, 생각이 한 방향으로만 흘러갈 수 있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고요. 그래서 가벼운 피로가 느껴질 때는, 취향이 느껴지는 공간을 천천히 유영해요. 음식과 커피와 술, 장소가 주는 감각만으로도 머리가 자연스럽게 환기되거든요.
 
다만 그 스트레스가 컨디션 문제를 넘어, 생각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될 신호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잠을 잘 못 자기 시작하면 ‘지금 생각을 정리해야 할 타이밍이구나’라고 인지하고 정면으로 마주해요. 혼자 조용한 동네를 걷거나, 음악을 듣고 생각을 충분히 풀어내면서요. 감정이 더 깊어질 것 같으면 글로 적어보기도 하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해 다각도로 듣고 스스로를 점검해보려고도 해요. 충분히 생각하고, 말로 풀어내고, 결국엔 얕게라도 납득할 수 있는 답을 만들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더라고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 내면을 오롯이 이해하고 기다리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모든 과정에 음악이 늘 함께해요. 평소에도 기분과 장르별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두고, 그날의 감정에 맞는 음악을 꺼내 듣는 게 저만의 회복 방식이에요. 음악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디제잉을 잠깐 배워보기도 했고, 한동안은 ‘엘랄랄라’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플리 채널을 운영하기도 했어요. 지금도 가끔은 친구가 운영하는 바에서 음악을 틀어요. 일에서의 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지만, 이런 시간이 결국 다시 일에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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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렬이 되면, 그 다음은 끝까지 디깅합니다”

 
해리님은 자신의 업무 스타일을 두 단어로 표현합니다. Align & Digging. 머릿속에 일이 흩어져 있으면 먼저 틀을 만들고, 위계와 흐름, 메시지를 정리합니다. 그 다음엔 “왜 이 일이 생겼는지”를 파고들어 스스로 납득한 뒤에야 밀도 있게 끝까지 가져가는 타입이라고요.
 
이 철학은 캔디드에서의 역할 정의와도 닮아 있습니다. 채용을 ‘요건에 맞는 사람을 빠르게 찾는 일’로 두면, 결국 서류는 키워드 스크리닝으로 쪼그라듭니다. 반대로 채용을 ‘왜 지금 이 역할이 필요한가’를 정의하는 문제로 보면, 고객사도 후보자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전제를 드러내야 합니다. 해리님은 캔디드에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해리님은 장기 목표를 숫자로 고정해두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다만 방향은 분명합니다. “언젠가 내 업을 하고 싶다.” 그 업이 캔디드의 연장선이 될 수도, 다른 형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지금’의 경험이 그 탐색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기회는 아직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어요.”
“평생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해리님의 커리어가 던지는 메시지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대신 실행 가능한 형태로 남습니다. 나의 확신을 정리하고,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명확히 하고, 두드리기.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의 맥락을 정렬한 뒤에는 끝까지 디깅하기.
 
그 방식으로 해리님은 스스로의 커리어를 ‘점프’가 아니라 ‘서사’로 만들어왔습니다.
 

여러분의 커리어는, 지금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나요?

 

인터뷰를 읽고 나서... 나만의 서사가 담긴 커리어를 만들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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